봉사자후기
관리자 | 2023-08-24 | 조회 710
명동밥집의 훈김
전주교구 신학생 이현수 스테파노
저는 전주교구 신학생으로 교구에서 그리고 저의 본당에서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지난 4년을 살아왔습니다. 어느새 저에게는 존중과 사랑과 배려를 받는 것이 당연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본향의 품을 떠나 세상 안에서 또 하나의 교회로 살아가보길 원했습니다. 그러던 중 전주교구 신학생으로는 처음으로 명동밥집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설렘도 잠시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 빽빽한 지하철 노선도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내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과 설렘 가득한 첫 출근에 가장 먼저 저를 반긴 것은 한쪽 벽에 걸린 명동밥집 기도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글귀는 제 눈길을 앗아갔습니다. ‘거리의 예수님께 한 끼 식사를 대접하세요’. ‘멈칫’하였고 ‘뜨끔’하였습니다. 나는 과연 오늘 출근길에 만났던 많은 이들 중에 과연 한 명이라도 예수님으로 마주하였는가...? 안했고, 못했습니다. 저는 명동밥집을 찾아오는 손님 모두를 예수님으로 맞이하리라 다짐을 하며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작심삼일이 아니라 3시간도 못가서 저는 오시는 손님들을 기쁘게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제게 처음부터 마지막 날까지 그 어떤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선배봉사자님들은 제게 모두 선배님이며 선생님이셨습니다. 저에겐 없던 작은 배려, 말 한마디에서도 느껴지는 따스함, 몸에서 배어나오는 존중 등... 모두들 하느님의 도구로 한 분한 분의 예수님을 맞이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이전까지 저의 모든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의 시작은 ‘나’였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까? 내가... 내가... 다시 한 번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일을 해나가야만 하는가? 하는 물음을 곱씹어왔습니다. 이런 ‘나’로 부터의 시작은 제 안에 하느님을 밀어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명동밥집에서 만난 모든 분들은 지난 4년간 학교에서 수업, 강연, 세미나 등등 수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하였던 것을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곧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저는 신학생으로 살며 그간 무엇을 배우고 살아왔던 것인가 싶어 부끄럽기까지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명동밥집에서 보낸 올해 봄은 유난히도 따스했습니다. 훈김어린 봄바람처럼 다가와 제 안에 다시끔 새순을 움트게 해주었습니다. 봉사하러 온 저는 되려 봉사를 받았고, 가까이서 배웠고 매 순간 크신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조금은 부끄러운 고백입니다만 명동밥집에서 받은 따스한 훈김 잃지 않고 기쁘게 하느님 사랑 전하며 살아가 보겠습니다.
끝으로 제가 보기보다 표현 서툴러 따스한 말 한마디 잘 못하고 떠난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명동밥집 공동체 여러분! 여러분들은 제게 늘 하느님의 사람이셨고, 하느님의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언제나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전하는 기쁜 공동체로 지내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