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40여 년간 몰랐던 곳[공간의 재발견/정성갑]
관리자 | 2022-01-21 | 조회 1558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지난주 난생처음으로 ‘봉사’를 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누님 덕분이었다. 가질 만큼 가졌고 좋은 브랜드, 좋은 서비스에도 훤한 그분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봉사 활동을 했다. 밥을 지어 무료 급식을 하는 일이었다. ○○밥집이라는 그곳에서 그녀는 식판을 나르고 보리차를 따라 주었다. 1년 가까이 개근이었다.
왜 그리 열심일까? 궁금하던 차에 그녀가 불쑥 제안을 했다. “한 번 나와 보면 어때요?” 한 번이라니 부담도 없고 일도 그리 힘들 것 같지 않아 흔쾌히 예스 사인을 날렸다.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 40분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오늘 역대급 추위라며 그 누님이 손난로를 건넸다. 신발 밑창에 붙이는 발난로도 챙겨 주었다. 신부님의 당부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물을 마시고 있을 때 식판을 치우면 마음 편히 못 드시니 꼭 식사를 다 마친 뒤 정리해 주세요.” “밥솥을 너무 일찍 가져오면 밥이 식어 맛이 없으니 조리실에서 적당한 타이밍에 옮겨 와 주세요.”
나는 식판조였다. 배식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조리실에서 밥솥을 나르고 잔반을 처리하고 식판과 젓가락을 채워 놓는 일. 천막을 치고, 배식대가 자리를 잡고, 자원봉사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자기 자리에 서자 본격적으로 배식이 이뤄졌다. 어떤 분은 고봉밥을 드시고도 “더, 더” 하고 속삭이듯 말했고, 또 어떤 분은 신사처럼 차분하게 식판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원봉사자들은 통로를 오가며 식판을 유심히 살피다가 떨어지기 전에 필요한 것을 채워 드렸다. 밥과 물은 김이 모락모락 한 정도를 넘어 핫팩처럼 뜨끈한 채로 나갔다. 나 말고도 자원봉사자가 많아 몸이 힘들지는 않았다. 평일 아침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봉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곳을 찾는 하루 400∼500명의 노숙인보다 더 놀랍게 와 닿았다. 오후조와 인수인계를 하고 나도 고봉밥을 먹었다. 뜨거운 밥과 보리차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는 사실에 마음 한편이 저릿했다.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빵빵하기도, 부끄럽기도 했다. 빵빵한 건 좋은 일을 했다는 알량한 쾌감 덕분이었고, 부끄러운 건 코로나 시국을 원망하며 유럽이니 캐나다니 더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한다고 징징거렸던 마음 때문이었다. 내가 40년 넘게 몰랐던 세상은 지하철로 겨우 20분 거리인 곳에도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세상을 보는 눈과 마음의 문을 다른 각도에서 열어 보였다. 세상은 저 멀리, 비행기를 타고 가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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