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자후기
관리자 | 2024-03-12 | 조회 1091
명동밥집 6개월
신현경
2023년 7월 무덥던 여름 어느 날 ‘봉사활동’ 구글링으로 찾은 명동밥집에 대한 궁금함으로 꽉차 있던 나에게 드디어 2023년 7월 14일 ‘명동성당 영성센터 B101호’로 오라는 사무국장의 안내 전화를 받고서, 당일 이른 시각에 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영성센터를 입으로 계속 되뇌며 물어물어 한 쪽 외진 건물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9시20분 사무국장의 공지사항 전달을 시작으로, ‘명동밥집 기도문’을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함께 외움으로써 공동체로서의 자세를 다지는 것 같았고, 처음 듣는 기도문의 내용은 낮은 곳으로 향한 사랑의 진리를 실천하려는 말씀으로 낯설지 않게 들렸다.
8시30분에 밥짓기와 반찬 조리 시작을 하지만 주로 나는, 그 이후 거의 매번 똑같이, 9시35분 명동밥집 배식 준비를 부지런히 서두른다. 초등학교 때 바닥 청소하고 책걸상 줄맞춰 가지런히 배열하듯, 아주 큰 접이식 텐트를 치고 나서 기다란 카펫을 펴고 쓸고 그 위에 1인용 푸른 접이 밥상과 동그란 의자를 놓고 소독용 스프레이로 깨끗이 닦으며 따뜻한 물 준비하느라 너나없이 모두 바쁘다. 일찍이 늘 맛깔나는 국을 조리하시는 신부님의 정갈한 목소리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하시는 11시 아침 인사와 함께 머리 위 손하트로 시작되는 밥집 배식은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서 처음 만나는 주변 친구들과의 첫 만남과 같이 얼마 전까지도 나에게는 다소 생경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배식이 있는데 1시 경에 400명 전후의 손님이 있고, 오전 조와 오후 조가 교체되면 1시부터 4시까지 계속 손님을 받아서 보통 850명 이상 어떤 날은 900명 이상이 따뜻한 식사를 하시며, 빵도 1개씩 드리면, 그런 날은 정신없이 손발을 재빨리 움직이게 되니 잡념은 전혀 있을 수 없다. 들어오셔서 자리에 앉는 분들에게 ‘어서 오세요’ 인사와 함께 추가 음식 요청이 있을지 계속 둘러보고 맛있게 식사를 끝내시면 ‘안녕히 가세요’하며 자리 세척과 식판 퇴식을 하느라 자원봉사일에 대략 10,000보 정도를 명동밥집에서만 기록하고 있다고 하면 주변 친구들 모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며칠 전 설 맞기 전에 두 동기와 저녁을 같이 했다. 하도 추워서 털모자, 털귀마개 및 목토시에 마스크까지 하고 음식점에 들어서서 방한 무기를 하나씩 벗으니, 먼저 와있던 두 동기들이 눈을 크게 뜨며 ‘얼굴 좋아졌네’, ‘여유가 보이고 밝아졌어’ 라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요새도 명동밥집 계속해? 힘들텐데?’라고 묻기에, ‘살쪘나? 약간 어려울 때도 있지만 아주 좋아’ 라며 근래 명동밥집 후일담을 얘기해 주었다.
보름 전에는 아내와 딸이 모처럼 다 같이 있는 주말인데 ‘당신 얼굴에 늘 있던 날섬이 안보이고 뿔뚝골이 푸근해졌네’ 라며 아내가 반겼고 ‘아빠, 요새 전과 달리 편해 보여.’라고 딸이 안도하듯 흘린다.
만 40년을 교직에 있으며, 강의와 연구 및 대학원생 지도로 늘 긴장이 지속되던 생활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들어선지 이제 6개월이 넘었다. 조바심에 결과를 독촉하며 월화수목금금금을 연구원들에게 외치던 내가, 주말에도 연구 현장에 나가 드론을 날리며 바다 저 너머에 설치한 기자재를 살피고 어민들과 끝없는 논쟁을 일삼던 내가, 찬바람 부는 얼굴에 오만상의 찡그림이 가득차 있던 내가, 명동밥집 활동을 하며 듣게 되는 가족과 동기들의 따스한 덕담으로 나 스스로에게 연민을 느낀다.
가끔, 일찍 눈이 떠져 명동밥집 주변 길에 쌓인 눈도 치우고 길을 틔우면, 무념에 든다 할까?
찐한 피곤함으로 둘러싸인 표정의 손님이 계속되는 잔기침으로 제대로 드시기 어려운지, 밥풀, 양념 조각, 국물이 테이블 위와 바닥에 파편처럼 흩어진 상태에서도 수저를 안 놓으시는 그 손님이 안쓰러웠지만 다른 자리를 정리하느라 못 본 사이에 홀연히 나가신 손님에게 못 챙겨드린 미안함을 느끼며, ‘나 모르게 생긴 찡그러짐이 혹시라도 손님에게 엿보였나’라는 부끄러움과 자책감마저 느낄 때가 있다.
맛있게 드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