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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대침묵 식사 속 그리스도 발견하기 - 명동밥집 봉사 체험기

관리자 | 2021-08-11 | 조회 100

대침묵 식사 속 그리스도 발견하기

명동밥집 봉사 체험기

 

2021.08.08 발행 [1624호]

 

▲ 정석원 신학생(왼쪽 두 번째)이 명동밥집 봉사가 끝난 후 봉사에 함께 한 부제 및 신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금 있는 곳에서, 당신이 가진 것으로 당신이 할 수 있는 바를 실행하라.” (Do what you can, with what you have, where you are.)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말은 항상 내 안에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모든 인간이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유에서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만일 눈앞에 있는 우리 교회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면.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제목으로나 가능한 ‘한여름 밤의 꿈’일 뿐 코로나 시대에는 어림도 없는 지나친 희망 사항일까. 서울 명동에 위치한 무료급식소 명동밥집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의 본래 모습이 있었다. 모두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그리스도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봉사에 참여한 9명의 신학생 ‘깨비드릴조’

7월 14일. 나는 서울 대신학교 여름방학 프로그램으로 2명의 부제를 포함해 총 9명의 신학생과 함께 명동밥집 봉사에 참여했다. 우리 9명은 종종 모여 묵주기도와 모임을 하는 신학교 내 생활조로 자체적으로 정한 조 이름은 ‘깨비드릴조’이다. 조 이름은 모임 때 포켓몬이라는 만화 속 캐릭터 이름에서 영감을 받은 1학년 신학생의 아이디어가 채택됐다. 우리 ‘깨비드릴조’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신학생은 올해 만 35세다.

오전 9시. 우리는 영성관에서 봉사자들과 함께 명동밥집 센터장인 김정환 신부님을 만났다. 여름인 데다 전해 듣기로 일의 강도도 알고 있어 김정환 신부님을 뵈면 왠지 피곤함에 찌든 모습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신부님에게는 유머, 여유, 생기가 충만했다. 우리는 옛 계성여고 운동장 한가운데 거대한 천막을 설치했다. 그리고 음식 준비, 설거지, 식판과 식사자리 정리 등 식사 준비에 들어갔다. 주메뉴는 흰 쌀밥과 궁중떡볶이였다.

이날은 평일 역대 최대 인원인 550명이 방문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된 이후 더욱 갈 곳이 없어진 분들이 평소보다 더 많이 이곳을 찾고 있다고 김정환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맡은 첫 임무는 설거지였다. 오전에만 300명이 넘는 분이 오셨기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식판이 쏟아졌다. 오전 음식 준비 때 오이묵무침을 위해 오이를 먹기 좋게 예쁘게 칼로 자르는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셨던 자매님이 계셨다. 자매님은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미사 참여를 안 하고 지냈는데, 이곳에 매력을 느끼고 계속 봉사한다며 하느님께서 이렇게라도 자신을 교회로 부르고 계신 것 같다고 말했다.



조용한 식사 속 마주한 하느님의 현존

식사시간이 됐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대침묵 속에서 식사가 진행되었다. 함부로 카메라 렌즈를 들이댈 수 없었고 식사를 하는 분들과 대화도 할 수 없었기에 우리는 눈에 한분 한분을 담고 또 담았다.

반팔 하나만 입고 있어도 감당하기 어려운 더위 속에서 두꺼운 점퍼를 입고 온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었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잘 때 입은 점퍼를 그대로 입고 오신 듯했다. 실제로 수백 명의 노숙인을 식사자리에서 보니 감히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인생, 그 전체성을 향해 나와 함께 있는 신학생들의 의식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까. 이분들에게 희망이란 어떤 의미일까. 마지막으로 원없이 춤을 춘 적이 언제일까. 아니, 다 잘사는데 굳이 내 인생만 끝까지 도와주지 않는 하느님의 그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 나는 이기적인 침묵에 영혼의 근육이 다 풀려있지는 않을까. 대침묵의 식사자리는 이제 그럴 기운도 없지만, 그분의 멱살이라도 한 번 잡고 따져보고 싶은 그 모든 마음의 응어리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이었다. “그래, 밥 먹자. 우리 같이 밥 먹고 얘기하자.” 극도로 굶주린 이들에게는 밥 한 끼가 하느님이다. 하느님이 밥 한 끼로 대체될 수 있는 분이라기보다 배고픈 이에게 한 끼의 식사는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느님의 궁극적 현존이다.

방문객 중 밥을 세 그릇이나 드신 분도 계셨다. 흐뭇했다. 또 많은 음식을 받고 거의 드시지 못하는 분도 적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식사하지 않는 분도 계셨는데 그분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김정환 신부님께는 봉사 중 눈이 마주치는 대로 명동밥집에 대한 질문을 했다. 오후 2시가 넘었을 때쯤 “신부님, 점심 드셨어요?”라고 여쭙자, 신부님께서는 “아니. 내가 점심을 먹으면 일을 못 해”라고 하셨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우리와 헤어지기 전까지 신부님은 물만 몇 모금 드셨다. 오후 4시 반. 아침에 설치했던 천막과 카펫을 완전히 철거했다. 가장 숭고한 일을 했지만, 외관상으로는 마치 이곳에서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마무리되는 텅 빈 운동장의 모습이 9명 신학생의 시선 넘어 자리 잡았다.



성체가 교회를 만들고 교회가 다시 성체가 된다

오전에 작업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봉사자들과 함께 ‘무료급식소 명동밥집 기도문’을 함께 바쳤다. 기도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만나는 모든 이들 안에서 주님의 얼굴을 뵈옵게 하소서.” 어쩌면 우리는 오늘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가 각자의 얼굴을 상대 안에서 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한몸이자 동등한 사람이며, 서로를 먹여줌으로써만 살아갈 수 있는 내 몸이다.

몸은 만신창이가 됐는데도 불구하고 식판 위에 있는 성체를 배달하며, 교회라는 야전병원에 오신 분들과 이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성체가 교회를 만들고 교회가 다시 성체됨을 보았다. 다만 온전히 한몸이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그리스도의 몸에게 그리스도의 몸을 전달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 모든 것이 한여름 밤의 꿈은 아니었다.

정석원(다니엘, 서울대교구 신학생)